[시집 책갈피] 기형도 - 오후 4시의 희망
오후 4시의 희망 기형도 金은 블라인드를 내린다, 무엇인가 생각해야 한다, 나는 침묵이 두렵다 침묵은 그러나 얼마나 믿음직한 수표인가 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내게 그걸 가르쳤다 김은 주저앉는다, 어쩔 수 없이 이곳에 한번 꽂히면 어떤 건물도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금은 중얼거린다, 이곳에는 죽음도 살지 못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것과 섞였다, 습관은 아교처럼 안전하다 김은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본다, 쏟아질 그 무엇이 남아 있다는 듯이 그러나 물은 끝없이 갈아주어도 저 꽃은 죽고 말것이다, 빵 껍데기처럼 김은 상체를 구부린다, 빵 부스러기처럼 내겐 얼마나 사건이 많았던가, 콘크리트처럼 나는 잘 참아왔다 그러나 경험 따위는 자랑하지 말게 그가 텅텅 울린다, 여보게 놀라지 말게, 아까부터 줄곧 자네 뒤쪽..
2020. 10. 2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