반응형
안쪽
류근
동네 공원에 저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앞세우고 와서
한나절 새우깡이나 비둘기들과 나눠 먹다가 어머,
어머, 어머낫!
그새 발목까지 흘러내린 엉덩이 추켜올리며
새우깡 알맹이 부스러지듯 흩어져 집으로 향하는
저 여인들 또한 한때는 누군가의 순정한 눈물이었을 테고
지금껏 지워지지 않는 상처일 테고
세상에 와서 처음 불리어진
첫사랑 주홍빛 이름이었을 테지
어쩌면 그보다 더 살을 에는 무엇이었을 테지
여인들 떠나고 꾸룩 꾸루룩,
평생 소화불량 흉내나 내는
비둘기를 마저 사라져버린 공원에 긴 졸음처럼 남아서
새우깡 봉지와 나란히 앉아 펄럭이는 내 그림자 곁으로
오후의 일없는 햇살 한 줌 다가와 어깨를 어루만진다
새우깡 빈 봉지의 안쪽 살갗이
저토록 눈부신 은빛이었다는 걸
처음 발견한 내 눈시울 위로 화들짝 꽃잎 하나 떨어진다
반응형
'평생 책갈피 > 시집' 카테고리의 다른 글
[시집 책갈피] 박소란 - 푸른 밤 (0) | 2020.10.02 |
---|---|
[시집 책갈피] 기형도 - 가수는 입을 다무네 (0) | 2020.10.02 |
[시집 책갈피] 류근- 너무 아픈 사랑 (0) | 2020.10.01 |
[시집 책갈피] 기형도 - 10월 (0) | 2020.10.01 |
[시집 책갈피] 기형도 - 위험한 家系. 1969 (0) | 2020.09.30 |
댓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