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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시집 책갈피] 기형도 - 바람은 그대 쪽으로

by 별과자 2020. 9. 25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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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람은 그대 쪽으로

 

 

기형도

 

 

 

 

 

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. 단 하나의 靈魂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 窓門으로 다가간다. 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곳을 찾고 있다. 외롭다. 그대, 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 短篇의 잠속에서 기여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. 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 沈默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. 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한다. 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, 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. 아아, 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. 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. 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수 없는 生의 僻地를 조용히 바라본다. 그대, 저 고단한 燈皮를 다 닦아내는 薄明의 시간, 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.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 

*靈魂(영혼)

*窓門(창문)

*短篇(단편): 짧은 시문. 짤막하게 끝을 낸 글. 또는, 짤막한 영화

*沈默(침묵)

*僻地(벽지): 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으슥하고 한적한 곳. 외진 곳.

*燈皮(등피): 등불의 겉 표면.

*薄明(박명): 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뒤 얼마 동안 주위가 훤한 정도로 밝은 현상. 또는, 그 시각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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