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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
나희덕
이를테면, 고드름 달고
빳빳하게 벌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
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,
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
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
나는 대답하겠습니다.
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,
희미하지만 끝내 거지지 않는 게
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.
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
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
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
좋겠다고, 아니면 겨울 빨래에
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
그것이 마르는 날
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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